故 김윤회 독립 유공자

故 김윤회의 뒤늦은 독립유공자 선정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됨과 동시에 창씨개명, 신사참배 등 조선민족 말살정치의 치욕스런 일제 강점기는 1945년 8.15 해방을 맞아 그 수난의 역사는 막을 내렸다. 하지만 해방된 지 75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곳곳에 남아 있는 친일잔재, 식민지잔재,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우리 후손들이 풀어야할 과제는 아직도 산재해 있다. 강대국의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대리전이 되었던 6.25 전쟁, 독재에 맞선 4.19혁명과 5.16군사 쿠데타 등 역사의 한 획을 그었던 대한민국의 비극은 여러 후유증만을 남긴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독립운동을 위해 일생을 바쳐야 했지만 이미 작고하고 세상에 없는 숨은 독립유공자의 공로를 치하하고 찾아내는 일은 우리 후손들의 몫이다.

1950년 6.25 당시 공권력에 의해 억울하게 무참히 희생당한 독립유공자 고 김윤회는 나라를 위해 헌신했음에도 불구하고 독립유공자 선정에서 배재되었으나 후손들에 의한 각고의 노력 끝에 70년만에 독립유공자로 선정되었다.

 

독립유공자 고 김윤회의 학창시절 활발한 학생회 활동

1910년 한일합방으로 조선의 국권을 강탈한 일제는 총독부를 설치하여 행정, 입법, 사법 및 군까지 장악하여 우리민족을 무참히 탄압하였다. 우리민족은 이런 잔혹한 일제의 탄압에 맞서 목숨을 걸고 항거하며 나라를 되찾기 위한 갖은 혼신의 노력을 다 하였다.

이러한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 독립운동의 중심에서 활발히 할동한 그는 10여년전 독립유공자로의 서훈이 보류되었다가 뒤늦게 제75주년 광복절을 기하여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훈 받았다.

독립유공자 고 김윤회는 1913년생으로 일제 강점기 때 중농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부여공립보통학교 졸업, 공주중학교(4년제학제) 재학 중 퇴학, 1932년 3월 공주사립영명학교를 졸업하였고 동년 4월 경성사립법정학교(현 고려대학교법과대학 전신)를 입학 하였으나 일본정보경찰들의 집요한 사찰로 동교를 졸업하지 못하였다. 그는 보통학교와 중학교 재학시절 항일운동에 적극 동참하였으며, 1933년 8월 “학교 내 독서회” 조직, “조선 학생과학연구회” 등 활발한 학생단체 활동을 하였다. 당시 그는 일제의 집요한 동향사찰을 피하기 위해 이명(한상훈, 한상철, 임택수, 김락철, 김철환 등)을 사용하며 활동했으나, 일본경찰에게 1936년 7월 경성검찰국에서 검거되어 치안유지법,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선고 받아 경성서대문형무소에 수감 투옥되었다.

그 후에도 목숨을 아끼지 않은 치열한 항일투쟁으로 종로경찰서, 강경경찰서, 공주경찰서, 신의주경찰서 등 전국적으로 지속적인 수배로 결국 신의주형무소에서도 수감 되었고, 1950년 6.25 전쟁 시 미결수로 대전형무소 수감 중 공권력에 의해 대전소재 산내면에서 무참히 학살 당했다.

유공자 부인과 아들

김구선생과 같은 문중으로 선친을 통해 교류하며 친밀감을 유지하던 인물

고 김윤회는 성장과정에서 선친 고 김재춘으로부터 배어온 항일의식은 일제치하에서 일본인 교사들이 조선학생들에게 행한 잔인한 행태에 대하여 강한 반항의식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으며 학생운동 및 사회활동 등으로 항일의식에 대한 그 싹을 피웠다.

해방 후에는 민족교육에도 관심을 갖고 지역민들의 교육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선친의 소유지에 현 송간초등학교 전신인 부여보통학교부설 송간간이학교를 유치하는데 노력하였다. 그는 학생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가장 선봉에 서서 항일의식을 불태운 환경적인 배경에는 조선독립운동을 위해 항일투쟁의식이 투철했던 그의 부친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 김윤회의 선친인 고 김재춘(1879~1957)은 백범 김구(1876~1948) 선생과는 같은 안동김씨 문중으로 종중회에서 수시로 직접 교류하며 친밀감을 유지하던 인물이다.

그의 부친은 평소 강한 항일의식으로 일본에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민족에서 평등을 요구하는 국가와 민족으로서의 인권국가로 바로서기를 간절히 원하였으며 “인간은 태어나면서 부터 만민이 평등해야한다”는 “만민평등 사상”이 투철했다.

각지역민들 간의 화합정신과 투철한 민족의식으로 후세교육에도 관심을 가졌으며 1910년 한.일합방 전후엔 충남도청 소재지 공주 “수전소(收錢所)”에서도 활동하며 충북괴산, 경북김천, 충남공주 등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정인옥(공주시에서 1981년 국가유공자 선정) 선생과 교류하며 중국 상해임시 정부 등에서 독립자금 모금 운동과 지원활동 등으로 국가의 자주독립을 위해 힘썼다.

학찰시절 춘원 이광수 선생님과 함께한 고 김윤회

국가 건립에 이바지한 공으로 “건국 훈장 애족장” 서훈을 받기까지

본 수훈을 위해 독립유공자의 손자 김정관(현 서부발전소 근무)과 수훈자의 집안동생인 행정학 박사 김경회(전 중부대학교경찰행정학과 교수, 전 대통령 국가지속가능발전자문위원 등을 역임)가 각고의 노력으로 고 김윤회는 지난 2020년 8월 15일, 제 75주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대한민국의 자주 독립과 대한민국 국가 건립에 이바지 한 공으로 건국 훈장 애족장을 수상하였으며 당사자인 고 김윤회를 대신하여 그 유족인 손자 김정관이 대리 수상하였다.

서대문 형무소 수감시절(1935년 7월)

국가유공자에 대한 바람직한 우리의 자세

우리가 누리는 이 자유와 평화는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조국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은 피눈물 나는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우리후손들은 역사를 마주할 때 일제 강점기 시기에 독립을 위해 온 생애를 바쳤던 독립유공자들의 희생을 기리고 오늘의 평화로운 일상을 있게 해준 고마움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대부분의 독립유공자는 제대로 된 예우조차 없이 아픈 역사를 뒤로한 채 세상을 떠났다.

일제강점기 6.25 전쟁 등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평범한 일상을 보내기조차 힘들었던 독립유공자의 명복을 빌며 그들의 후손들에는 위로와 현 정부에게는 독립유공자와 그들의 후손들에게 더 많은 관심과 더 좋은 독립유공자 정책 변화를 기대한다.

자료출처 : 1. 일제 탄압 시 요미우리, 마이니찌, 국내외 신문등

2. 사상휘보 8호(소화 11년 9월) 고등법원 검사부 자료

3. 법무부 수형인 명부

4. 한민족 독립운동사 자료집

 

 

저작권자 © 뉴스매거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