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바로 알아야 국가의 미래도 있다”

대한민국 무공수훈자협회 강화군지회 김명선지회장

“국가 유공자의 숭고한 정신을 기억하고 계승·발전시키자”

세계최고 빈곤 국가였던 대한민국을 부유한 선진국의 반열에 올려놓은 이들은 지금의 국가유공자들이다. 6·25 전쟁으로 국가의 운명이 바람 앞에 등불처럼 위기에 처했을 때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자유 민주주의를 수호한 국가 유공자들의 공을 높이 기리는 것은 우리 국민이 해야 할 의무이다.

6·25 전쟁에 참전한 유공자들의 자부심을 높여주고 그들의 사기를 북돋워 주는 것 또한 후손들의 몫이다. 국가유공자들은 이념의 대립과 갈등이 야기한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 전쟁 때 조국의 창과 방패가 되어 대한민국을 지켜내었다. 그들의 거룩한 정신을 길이 후대의 후손에게도 남기고 국가안보정신을 더욱 굳건히 하는 것 또한 국민의 의무이다.

전쟁이 끝나고 휴전협정을 맺은 지 반세기가 훨씬 넘은 지금도 전쟁의 상흔은 그대로 남아 있다. 국군포로귀환, 아직도 남은 전사자 유해발굴 등 수많은 난제들이 산재해 있지만 전쟁의 역사는 국민들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혀져가고 있다. 이들의 숭고한 정신과 애국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해 강화도의 보훈단체인 무공수훈자회 강화군지회 김명선 지회장을 만나 그들의 고뇌와 고충에 귀 기울여 보면서 암울했던 한국전쟁의 역사를 되짚어 보았다.

 

무공수훈자회는 1989년 5월에 설립

대한민국 무공수훈자회는 국가수호유공자 단체로서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의 평화적 조국통일 성업 달성과 국가발전에 기여함과 동시에 지역사회봉사 및 복지증진을 위해 노력함을 목적으로 한다. 회훈은 충성·봉사·단결이며 복무의 중점적인 내용은 위국헌신, 안보계도, 회원복지향상, 인화단결, 지역사회 봉사이며 중앙회는 용산구 이태원로 전쟁기념관 4층에 위치해 있다.

무공수훈자회는 1989년 5월에 설립되었으며, 국내외 안보 정세 속에서 일치단결하여 나라사랑, 정신함양에 앞장서는 한편, 조직의 변화와 혁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약 11만 명의 회원들을 유지하고 있는 무공수훈자회는 국가유공자들의 권익을 위해 노력해왔으며 회원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단결로 지금껏 성장해 왔다. 무공수훈자회는 6.25참전 때 공을 세운 수훈자들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무공훈장의 종류로는 태극훈장, 을지훈장, 화랑훈장, 충무훈장, 인헌훈장 그리고 33년 이상 근속자에게 주는 보국훈장 광복장 등으로 나뉘며 무공수훈자가 누릴 수 있는 혜택으로는 영예수당과 보훈병원 진료, 국립묘지 안장 등이 있다.

대한민국 무공수훈자회 강화군지회는 김명선 지회장이 수장으로 이끌어 나가고 있으며 회원들이 일치단결하여 지역사회 봉사와 후손들을 위한 국가안보교육으로 국가에 헌신하고 있다.

대한민국 무공수훈자회 부설 유족회는 회원 간의 상부상조로서 자활능력을 배양하고 남편들의 유지를 이어 조국의 평화 통일을 앞당겨 이룩할 수 있는 활동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장진호 전투영웅 추모행사를 1년에 한번 진행

대한민국 무공수훈자회가 주관하는 대표적인 행사로는 흥남 철수 때 장진호 전투영웅 추모행사를 1년에 한번 진행하고 있다. “장진호 전투”란 한국전쟁 때인 1950년 11월 말에서 12월 초까지 함경남도 장진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로 미국 제1해병사단을 주축으로 한 유엔군이 중국군 제9병단에 속한 3개 군단 병력과 벌인 전투이다.

김일성 정부의 임시수도였던 강계를 공격하기 위해 개마고원의 장진호 일대까지 진격해갔던 유엔군이 12만 명에 이르는 중국군에 포위되어 격전을 벌이다가 흥남으로 철수한 전투를 말한다. 중공군의 포위를 끝내 풀고 나온 미군의 고생까지 함께 기념하는 무공수훈자회에 대하여 주한미국 대사가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다. 그밖에 대표적인 활동으로 선양단 국가유공자 장례의전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태극기 및 대통령 근조기 전달 (전달문낭독 연중무휴), 인천시지부 선양단 의전 등의 의식과 행사에 연중 217회 정도로 적극 참여하고 있다.

김 지회장은 이에 대해 “국가 유공자의 장례 때 태극기와 대통령 근조기를 전달받으면 유가족들이 고인을 다시 아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며 “보람있다”고 밝혔다.

무궁수훈자회 강화군지회는 회원들이 갹출하여 강화군의 고등학생에게 1인당 50만원씩 두 명에게 장학금을 혜택을 주고 있는 등 사회공헌활동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지회장의 주된 업무내용으로는 회원입회와 훈장을 받은 단체로서 회원 복지를 위해 노력하는 것과 회원들의 인화 단결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강화군의 지역 내에서 보훈 관련하여 차량운용에 관한 체계를 정립하는 것이며 특히, 인천 보훈병원 환자 진료를 위해 매월 셋째 주 목요일 1회 운영 하고 있으며 이 업무를 정착시키고 있다.

죽을 뻔 했던 위기상황을 회고

김 지회장은 기무사에서 부사관 생활만 33년을 하였고, 1971년도 보안대 강화도 삼산면 방첩대에서 근무할 때 겪었던 특별한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월북했다가 다시 남으로 온 남파간첩 형제가 있었는데 동생이 먼저 자수를 하고 동생이 형도 자수하도록 설득해 보겠다고 했는데 형은 벽장에 숨어 김 지회장을 목표로 수류탄을 던지려고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었고 그 상황을 파악한 동생이 인천에 계셨던 모친까지 모시고 와 달래서 겨우 형을 자수시켰다.

형이 나중에 고백하기를 자신은 애초부터 간첩활동을 목적으로 남한으로 내려왔고 김 지회장이 그 집에 왔을 때 수류탄으로 다 죽이려 했는데 그때 동생이 어머니를 모시고 와서 형에게 자수할 것을 권유해서 겨우 마음을 바꾸었다고 말했다. 하마터면 김 지회장이 목숨을 잃을 뻔 했던 이런 위기상황 등을 회고했다. 이어 그는 “훈장의 가치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반적인 표창장은 도장이 1개가 들어가는데 훈장은 국새나 대통령 인장 등 도장이 3개가 들어간다. 훈장을 가지면 사형선고를 받아도 조정이 되었다.

이제 무공수훈자들이 나라를 위하여 기여한 바를 제대로 이해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숭고한 정신과 애국심을 기억해야 할 것

김명선 지회장은 국가 유공자에게 혜택을 지원하며 열심히 민생을 돌보는 유천호 강화군수에게 고마움을 전하면서 “코로나 19 사태로 어려운 시기를 지나는데 모두 건강하기를 바란다”고 무공수훈회 회원들과 모두에게 안부를 전했다.

김 지회장은 “전쟁에 참전하거나 군 장기근속으로 훈장을 받은 무공보국수훈자들이 지역사회 발전을 이끌어 간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현재의 좌우이념 갈등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본다고 말하며 정의로운 의지로 함께 국란을 극복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어려운 역사의 고비마다 수많은 국가유공자들은 나라를 위해 젊은 청춘을 바쳐야 했다. 그들이 살아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리며 태극기를 힘차게 흔들어주던 가족과 이웃들을 뒤로하고 젊은 나이에 전쟁터로 떠나야 했다.

하지만 이들 애국지사들에 대한 정부의 예우는 턱없이 부족하고 열악하기만 하다.

강화군내 최연소 6.25 참전유공자가 이제 평균나이가 91세임을 감안하면 앞으로 10년 내에는 그들 대부분 우리 곁을 떠난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이 남은 여생을 행복하고 조국에 대해 고마운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국민 모두가 그들을 국가의 영웅으로서 대우하고 그들의 숭고한 정신과 애국심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도 김명선 지회장이 이끄는 무공수훈자회 강화군지회가 힘찬 활동을 이어가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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