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에는 자원이라는 물자가 동원되고 동원되는 물자는 공급하는 사람과 그것을 수요로 하는 사람이 각각 있다. 그밖에도 그런 관계를 이어가는 권한을 지닌 사람이 있다.

 

그와 같은 사회적 재 관계를 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지는 것을 일(事)라고 한다. 일에는 규모의 대소와 장단간의 길이가 있다. 그러나 그 일은 최소한 공정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으로서의 정의는 반드시 정립돼 있어야 한다. 사회적 정의가 공명정대하게 존재 할 수 없다면 그것은 그 일이 개인적 또는 집단적 이욕으로 전락되고 아울러 사회적 다수인의 공익을 눈 밖으로 돌려버리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현상을 가리켜 부정, 비리, 부패라고 말한다.

어떠한 일이든 부정, 비리, 부패로 연루된다면 사회에는 정직이 통하지 않게 되고 인간에게는 신의가 통용되기 어렵게 된다.

그와 같은 단순한 일의 순환과정에서도 반드시 짚어봐야 할 것이 있다. 즉 일(事業)이 이루어지자면 인력의 동원과 물자의 공급과 수요의 유통이 이루어져야한다. 그리고 사회적 제 관계의 형성과정이 원활하고 공평해야 한다. 그 중앙의 중심지점엔 언제나 사람이 존재한다.

 

그 정위치가 바로 모든 면적의 중심이며, 모든 체적(體積)의 구심(球心)이다. 중심과 구심이 정확하게 제자리에 있을 때 그 마음을 정직(正直)하다고 한다. 정직은 모든 事와物에 반드시 직통한다.

직통하는 마음은 어떠한 애로(隘路)와 장해에도 저해(沮害) 당하지 않는다.

 

명나라 여곤(呂坤)은 그의 신음어(呻吟語)에서 말하기를 그렇게 정돈된 5가지 마음은 어떠한 어려움도 다 이겨나갈 수 있다고 했다.

첫째는 마음을 크게 키우라는 것이다.(大其心), 그러면 온 세상의 모든 사물을 편견 없이 다 용납 할 수 있다. (容天下地物).

둘째는 마음을 깨끗이 비우라는 것이다.(虛其心), 그러면 온 세상의 선(善)을 편애감정 없이 다 받아들일 수 있다. (愛天下之善).

셋째는 마음을 공평하게 지니도록 하라는 것이다. (平其心), 그러면 온 세상의 모든 사건을 이욕감정 없이 공평하게 다 의론할 수 있다. (論天下之事).

넷째는 마음을 밑으로 가라앉히라는 것이다. (潛其心), 그러면 세상의 모든 이치를 바닷물 속에서 바다 속 광경처럼 다 관찰 할 수 있다. (觀天下地理).

다섯째는 마음의 지향점을 미리 상정(想定)하라는 것이다(定期心), 그러면 온 세상의 모든 변화를 자주적 판단에 따라 대처해 갈 수 있다. (應天下地變).

그런 뒤에야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누리면서 늘 자강불식(自强不息)하는 즐거운 긴장(緊張)을 유지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세상만사는 모두가 사람으로 말미암아 성패가 정해진다하여 인인성사(因人成事)라 했다. 그리고 만사에는 하나로 통하는 진리가 있고, 만물에는 하나로 통하는 원칙이 있다.

이를 유물유칙(有物有則)이라 한다. 그것이 사유일진(事有一眞)이요, 물유일칙(物唯一則)이다. 만에 하나 이욕충동을 이겨내지 못하고 눈앞의 욕심을 버리지 못해 원대한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이른바 소탐대실(小貪大失)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恒山 金 裕 赫 단국대학교 종신명예교수.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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