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년 장인의 혼이 깃든 명품

김의영 명장

인류가 살아가면서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의식주(衣食住)이다. 그중에서도 의상은 신체를 보호해주는 기능적인 역할 뿐만 아니라 제복이나 특수복을 통해 한 개인의 다양한 사회적 지위와 역할에 대한 인지를 대변해 주고 있다. 양복의 유래를 살펴보면 양복은 처음 유럽에서 가장 먼저 입기 시작하였으며 어부들이 물고기 잡이에 편리하게 입을 수 있도록 디자인 되었던 것이 지금의 양복의 형태로 변모하였다. 어부들은 파도와 싸우면서 고기잡이에 편리하게끔 깃을 제끼고 단추가 적은 옷을 입었다고 전해진다. 어부들에게만 국한된 양복이 점차로 일반 대중들도 쉽고 편하게 입게 되어 오늘날의 양복이 대중화된 계기가 되었다. 충북 청주시 옥산면에서 54년째 양복을 짓고 있는 김의영 명장은 맞춤전문의 고급양복을 제조하는 양복 장인으로 양복을 만드는 일을 평생의 업으로 삼아왔다.

 

양복 만드는 일이 나한테는 천직이라고 예견

김의영 명장은 노인들과 소외된 이웃을 위한 다양한 봉사와 재능기부로 이웃사랑을 실천하면서 사회적 책임도 다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사단법인 양복협회 지부장과 장애인 기능경기대회 양복 심사위원을 역임하면서 동종업계에서도 모범적인 양복 장인으로 인정받고 있다.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에 위치한 “제일라사”는 54년째 외길인생을 살아온 김 명장이 운영하는 양복점이다.

그는 눈대중만으로도 고객의 신체 사이즈를 날아낼 만큼 타고난 감각을 지닌 양복 장인이다. 고교진학과 대학진학도 포기할 만큼 그의 양복 사랑은 남달랐다.

양복 만드는 일에 입문한지 3년 만인 열여덟 살 때 처음 바지를 지었을 때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내가 스스로 재단하여 바를 완성하니 그 성취감과 기쁨이 얼마나 컸는지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습니다. 3년 이후에 양복점 사장님이 이제부터는 ‘내가 숙식제공을 해 줄 터이니 열심히 기술을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길을 개척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신 부모님과 사장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그때서야 하숙생활의 꼬리를 마친 것에 대해 너무나도 나 자신이 자랑스러워 눈물겨워 하기도 했습니다”고 그 시절을 회상했다.

1985년 충북옥산에서 처음으로 꿈에 그리던 자신의 양복점을 오픈

7남매 중에 막내아들로 태어난 김 장인은 유년시절부터 학업이나 농사보다는 손재주가 뛰어나 목공이나 이발 기술 등에 관심을 더 기울였으며 양복 장인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는 “고향 청주에서 양복점을 하던 친척 형님이 하얀 양복과 하얀 백구두를 신고 추석 때 집에 왔는데 정말 멋져 보였다.

그 후 그 형님이 양복점을 운영하는 것을 어깨너머 지켜보면서 마음속으로 ‘양복 기술을 배워서 천직으로 삼아 꼭 성공하겠다.’고 마음속으로 결심했다”고 전했다.

군 제대 후 서울로 상경해 보험회사 영업사원과 이발소를 전전하던 그는 그 당시에는 노총각 소리를 들을 나이인 28살에 지금의 아내와 결혼하여 보금자리를 차렸다.

각고의 노력 끝에 1985년 충북옥산에서 처음으로 꿈에 그리던 자신의 양복점을 오픈하게 되었으며 그 당시 옥산면사무소의 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중학교 친구의 소개로 면사무소 직원 계원복을 맞추게 된 일이 그의 점포가 자리를 잡게 되어 성공하게 된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그 후 그의 사업은 20여 년 전 양복점에 있는 맞춤 양복과 양복 자재를 몽땅 도둑을 맞아 한차례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10년 동안의 각고의 노력 끝에 재기하여 승승장구 하며 탄탄대로를 걸었으며 지금껏 맞춤양복 전문점으로 결혼 예복과 신사복의 역사와 궤를 함께하며 지금에 이르렀다.

 

충북양복기능경기 1회부터 12회까지 심사위원을 역임

김 장인의 이력을 살펴보면 그는 1997년부터 2009년까지 충북양복기능경기 1회부터 12회까지 심사위원을 역임했으며 1996년 5월부터 2006년 5월까지는 충북장애인 기능평가 심사위원을 각각 역임했다.

2008년에는 사단법인 충북실버 예술문화 봉사단, 사단법인 충북한강나루 예술문화 봉사단, 사단법인 충북무심 문화 예술봉사단, 누리문화 예술 봉사단으로 활동하며 사회봉사 활동도 활발하게 펼쳐 왔다. 수상내역으로는 2017년 전국소상공인기능 경진대회에서 정우택 국회의원으로부터 표창장을, 충북장인 도지사표창, 21차 인도네시아 실버상 아시아 총회 말레이시아 장인상을 각각 수상했다.

2007년 4월에는 충북기능 경기 도지사 유공표창을 수상하며 그 능력을 인정받았다. 또한 2014년에는 시사매거진 CJB에서 이틀 동안 특집으로 방영되어 언론에도 여러 차례 소개 되어 명품 장인 업체로 인지도를 높였다.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계속 양복업계를 떠나지 않을 것

지금 한국 남성복 시장에도 캐주얼 바람이 불고 있다.

현대적인 세련미와 독창적인 디자인의 양복으로 넘쳐나는 지금 오직 전통을 추구하며 원칙과 소신으로 양복에 혼을 집어넣고 있는 82세 노장의 눈에는 새로운 브랜드 론칭이나 마케팅이니 하는 이야기는 남의 나라이야기로 들려진다. 하지만 요즘 양복의 트렌드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기에는 역부족일는지 모르나 그가 오직 54년 한길을 걸어오며 한 땀 한 땀 옷을 지을 때의 그의 거친 손은 대한민국의 양복의 역사를 말없이 대변해 주고 있다.

그는 “지금 현재까지 50년 전통 외길 인생을 걸어왔다.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계속 양복업계를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며 새로운 각오를 다졌다. 국내의 양복제작 기술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국제기능 올림픽 양복 부문에서 12연승을 기록하는 등 유럽의 전통 명품 양복 브랜드 기술 못지않게 뛰어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로마에는 1500년 역사를 지닌 양재학원이 존재하고 있다고 한다. 김의영장인의 명품 양복 기술이 후손들에게도 이어져 대한민국의 양재 기술이 전 세계에서 위상을 떨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이현승 기자

 

김의영 장인 Profile

1997. 4. 10-2009. 4. 8 충북양복 기능경기 심사위원

1998. 5. 24.-2006. 5. 20 충북 장애인 그능평가 심사위원

2009 HCN 7. 21, 23, 25 3일간 9회방송

2010~2011 (전)청주 양복협회 지부장

2014. 3. 17 청주 홍덕요양병원봉사 CJB 녹화방송

2014. 6. 26 충북 장애인기능경기대회 양복 심사위원

2014. 6. 26 충북장애인기능 경기대회 심사위원

 

수상경력

1998. 2. 23 복장기능경영 표창 수상

2001. 7. 6 한국양복장인상 표창수상

2003. 2. 23 복장모범 표창수상

2006. 8. 8 21차 아시아총회 말레이시아 장인상 표창수상

2007. 4. 16 충북기능경기 도지사 유공표창수상

2008. 2. 26 전세계 양복연맹회장 고 이순신 1회 표창수상

2011. 2. 21 한국맞춤양복협회 욘익장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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